국립극단, 이윤택 성폭력 의혹 후 性관련 확약서 받았다

안동환 기자
안동환 기자
업데이트 2018-02-14 18:32
입력 2018-02-14 17:18

연극계도 ‘#미투 ’ 확산

“3년 전 피해자 공론화 원치 않아
그 후 모든 스태프 계약서에
성문제 땐 즉시 해지 조항 넣어”
이미지 확대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오른쪽)을 통해 국내 대표 연극 연출가 이윤택(왼쪽)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과거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연합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성추행을 폭로한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14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윤택씨가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지금도 말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많은 연극 동지들에게 괜찮다고 힘들어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이윤택 연출가가 직접 해명하고 반성해야 많은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로 여겨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연극계 내 이씨의 피해자가 여러 명이라는 걸 시사했다.

김 대표는 이날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에 ‘metoo’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10여년 전 ‘오구’라는 작품으로 지방 공연을 할 때 자신이 직접 겪었던 성추행 피해를 폭로했다. 김 대표는 이 글에서 당시 연출가가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며 연습 중이든 휴식 중이든 꼭 여자단원에게 안마를 시켰고 그날도 자신을 여관방으로 호출했다고 썼다.

그는 “안 갈 수 없었다. 그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누워 있었다. 예상대로 안마를 시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가 갑자기 바지를 내렸다”고 적었다. 김 대표는 그 뒤 벌어진 이 연출가의 성추행을 참지 못하고 ‘더는 못 하겠습니다’고 말하고 방을 나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를 마주치게 될 때마다 나는 도망 다녔다. 무섭고 끔찍했다. 그가 연극계 선배로 무엇을 대표해서 발언할 때마다, 멋진 작업을 만들어냈다는 극찬의 기사들을 대할 때마다 구역질이 일었지만 피하는 방법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썼다.

연극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많다. 이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다. 특히 이씨가 2015년 국립극단에서 공연을 준비하던 중 여배우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당시 국립극단은 공론화를 원치 않는 피해자 의견을 존중해 이씨를 작품에서 하차시켰다. 국립극단은 그 사건 직후 모든 연출·배우·스태프들과 계약서에 ‘성추행이나 성폭행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계약을 즉시 해지한다’는 내용의 문구를 새로 넣고, 확약서를 받아 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 사건 이후 국립극단은 지금까지도 이씨와의 모든 작품 활동을 내부적으로 금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국립극단 출신의 한 배우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그가 연극판에서 신화적인 존재처럼 여겨지지만 작품과 별개로 그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윤택 연출가는 연희단거리패 김소희 대표를 통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의 의미에서 모든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연희단거리패는 3월 1일부터 이씨가 연출해 선보일 예정이었던 ‘노숙의 시’ 공연을 취소했다.

이씨는 시인 겸 극작가·연출가로, 1986년 부산에서 창단한 연희단거리패를 이끌어 왔다. 2004~2005년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맡았고,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는 이유 등으로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가 연출한 연극 ‘오구’는 2008년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을 받았고, ‘시민K’, ‘문제적 인간 연산’ 등 다양한 작품으로 각종 상을 받았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2018-02-15 12면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120년 역사의 서울신문 회원이 되시겠어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