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 적자 늪에 빠진 GM…2월 말 시한 못박아 대놓고 지원 요구

유영규 기자
업데이트 2018-02-14 00:40
입력 2018-02-13 22:44

‘군산공장 5월까지 폐쇄 ’ 초강수

국내 3위 완성차업체인 한국GM이 군산공장 폐쇄를 전격 결정한 것은 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의 치밀한 노림수가 깔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000여명의 ‘일자리’를 볼모로 한국 정부의 지원을 강하게 압박하는 동시에 추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의 협조를 손쉽게 얻어 내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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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폐쇄가 결정된 한국 제네럴모터스(GM) 전북 군산공장 앞이 썰렁하다. 이날 GM은 오는 5월까지 군산공장의 차량 생산을 중단하고 공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군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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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은 2014년부터 3년간 누적 적자가 2조원에 육박한다. 지난해에도 6000억원에서 최대 1조원의 적자를 본 것으로 추산된다. 이 과정에서 군산공장은 부실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부평공장은 가동률이 100%에 가깝고, 창원공장도 70% 수준인 데 반해 군산공장은 최근 3년간 가동률이 약 20%에 불과했다. 승승장구하던 군산공장은 2014년 말 쉐보레 유럽 철수와 지난해 1월 출시된 올 뉴 크루즈와 올란도의 판매 부진이 겹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GM의 ‘한국 철수설’이 고개를 든 것도 군산공장의 부진과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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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은 13일 “군산공장 폐쇄 조치는 한국에서 사업 구조를 조정하기 위한, 힘들지만 반드시 필요한 노력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군산공장 폐쇄는 한국 시장에서 손을 떼기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라 제대로 사업을 하기 위한 정상화 과정의 일환이라는 주장이다.

업계의 해석은 다르다. 군산공장을 폐쇄하면 최소 2000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1만 2700여명으로 추산된다. 한국GM은 이날부터 인천 부평, 경남 창원 등 다른 사업장에서도 명예퇴직(생산직+사무직)을 받기로 해 추가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 완성차 회사 관계자는 “GM이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한국의 정치 상황까지 철저하게 계산에 넣은 것 같다”면서 “노동친화적인 현 정부에 (한국에서) 아예 철수할 수도 있다는 시그널을 보냄으로써 자금 지원 결정을 압박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GM은 한국GM 정상화를 위해 3조원의 유상증자가 필요하며 지분(17%)을 갖고 있는 산업은행도 5000억원가량 수혈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자금 지원에 나설 경우 20만~30만대 양산이 가능한 신차 생산을 한국GM에 배정할 수 있다는 태도다. 하지만 자칫 GM의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실제 GM은 2014년 호주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중단되자 GM홀덴을 전격 폐쇄하고 호주에서 철수했다.

뒤통수를 맞은 우리 정부는 “GM의 일방적인 스케줄에 끌려가지 않을 것”이라면서 강경한 태도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하루 전날 GM으로부터 군산 공장 폐쇄 방침을 통보받았다. 정부는 어떤 상황에서도 한국GM에 대한 정확한 실사 없이 수혈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한국GM의 경영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산업은행이 객관적이고 투명한 실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한국GM에 대한 지원 여부는 GM이 어떤 내용의 신규 투자 계획을 들고 오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산은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나 산은의 재무 보고 요청 등에 GM이 내내 비협조적으로 일관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황당하기까지 하다”고 성토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고민도 깊다. 군산공장이 폐쇄될 경우 거기서 그치지 않고 협력업체 연쇄 도산으로 이어져 쌍용차 등 자동차업계 전반으로 불똥이 튈 수 있어서다. 한국GM 군산공장 협력업체들은 쌍용차에도 주로 납품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경제 타격과 대규모 실업 사태도 정부로서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한국GM 노조는 “GM이 한국 정부에 으름장을 놔 지원을 최대한 끌어내 보고 여의치 않으면 철수하려는 속내”라며 크게 반발했다. 노조는 일단 투쟁 방침을 세웠으나 뾰족한 수단이 없어 고민이 깊다. 노조 관계자는 “합법적으로 파업을 하려면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다”면서 “GM이 공장 폐쇄 시기까지 철저히 계산한 듯하다”고 말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2018-02-1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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