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실이 사용한 8세기 수세식 화장실 유적 경주서 발견

업데이트 2017-09-26 14:52
입력 2017-09-26 14:52

2칸 건물 안에 화강암 변기 설치…“완전한 고대 화장실 유적은 최초”

신라의 태자가 생활한 별궁인 경주 동궁(東宮)에서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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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에서 나온 수세식 변기
경주 동궁에서 나온 수세식 변기 26일 오전 신라의 별궁이었던 경북 경주 동궁(東宮)에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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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화장실 문화
신라시대 화장실 문화 26일 오전 신라의 별궁이었던 경북 경주 동궁(東宮)에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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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석조변기
통일신라시대 석조변기 26일 오전 신라의 별궁이었던 경북 경주 동궁(東宮)에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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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석조변기
통일신라시대 석조변기 26일 오전 신라의 별궁이었던 경북 경주 동궁(東宮)에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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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화장실 문화
신라시대 화장실 문화 26일 오전 신라의 별궁이었던 경북 경주 동궁(東宮)에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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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화장실 문화
신라시대 화장실 문화 26일 오전 신라의 별궁이었던 경북 경주 동궁(東宮)에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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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대 화장실 유적 중에 화장실 건물과 석조변기, 오물 배수시설이 모두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6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 북동쪽 지역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한 초석 건물지 내 석조변기와 배수시설을 공개했다.

이 건물지는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로, 전체 넓이는 24㎡다. 석조변기는 두 개의 방 가운데 한쪽에만 설치됐다.

출토 당시 석조변기는 타원형 변기 좌우에 발을 디딜 수 있는 널찍한 직사각형 판석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용변을 보면 오물이 암거(暗渠·물을 빼낼 수 있도록 밑으로 낸 도랑)를 통해 배출되는 형태다.

타원형 변기는 길이 90㎝, 너비 65㎝ 크기다. 옴폭 팬 변기에는 직경이 약 12㎝인 구멍이 뚫렸다. 이 구멍은 기울어진 암거를 통해 배수로와 연결된다. 타원형 변기 위에 올린 판석은 길이가 175㎝, 너비가 60㎝다.

연구소 측은 판석 또한 과거에 다른 장소에서 변기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타원형 변기를 제작한 뒤 발판을 만들기 위해 판석을 가져와 재활용했다는 것이다. 다만 발판으로 놓는 과정에서 판석의 좌우를 바꿔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판석의 아귀를 맞추면 가운데에 타원형 구멍이 생기는데, 구멍 옆에는 볼록하게 솟은 별도의 발판이 있다”며 “화장실 옆에 있는 또 다른 방은 용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이어 “물을 유입하는 설비가 따로 갖춰지지 않은 점으로 미뤄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변기에 흘려 오물을 씻어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며 “화강암이 쓰였고, 변기 하부와 배수시설 바닥에 타일 기능을 하는 사각형 전돌을 깐 것을 보면 신라왕실에서 사용한 고급 화장실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경주와 익산 등지에서 고대 화장실 유적이 출토됐다. 익산 왕궁리에서는 7세기 배수저류식 화장실 유적과 뒤처리용 나무 막대기가 나왔으나, 석조변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 경주 불국사에서는 8세기에 제작된 변기형 석조물이 발견된 바 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화장실 유적 외에도 남북 길이 21.1m, 동서 길이 9.8m인 대형 가구식(架構式) 기단 건물지가 확인됐다. 가구식 기단은 석재를 목조가구처럼 짜 맞춘 기단을 말한다.

이 건물지는 통일신라시대 왕경 도로와 맞닿아 있고, 규모에 비해 큰 계단시설이 있으며, 거대한 적심(積心·주춧돌 주위에 쌓는 돌무더기)이 발견돼 그간 경주 동궁에서 나오지 않았던 출입문(동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아울러 길이가 110m에 이르는 배수로와 깊이가 7.2m인 우물에서도 새로운 유물이 출토됐다. 배수로는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매립 당시 바닥에 소의 골반뼈를 두고 토기를 놓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우물은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토기와 작은 사슴을 넣어 의례를 지낸 뒤 폐기됐는데, 그 위의 토층에서 인골 4구가 나왔다.

이에 대해 장은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인골은 30대 남성과 8세 소아, 3세 이하의 유아, 6개월 미만의 아이로 분석됐는데, 모두 고려시대에 묻혔다”며 “우물을 무덤처럼 활용한 것인지, 인신공양 의례를 지낸 것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과거에 안압지로 불린 동궁과 월지(月池)는 7세기 후반에 조성됐다. 1975년 조사에서 인공 연못과 섬, 건물지가 발굴됐고 유물 3만여 점이 출토됐다. 2007년부터는 동궁과 월지 북동쪽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장 연구사는 “발굴지역에서 나오는 기와와 토기의 양상은 1975년 안압지에서 발견된 유물과 비슷하다”며 “동궁은 7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초반까지 사용됐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신라 동궁의 영역은 학계에서 논란이 있는데, 이번 조사로 동궁의 궁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단초를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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