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서울로7017’을 걷는다는 것/주현진 사회2부 차장

주현진 기자
주현진 기자
업데이트 2017-05-19 00:26
입력 2017-05-1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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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진 사회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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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고가를 공원으로 만드는 바람에 차가 막혀서 못 살겠어!”

지난 2015년 8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로7017 조성 계획’을 발표한 뒤로 언론들은 주변 지역 교통 문제에 주목해 이런 지적들을 쏟아냈다. 고가 이용 차량이 하루 4만 6000대였던 만큼 차량 통행을 막아선 이후 일대 교통이 불편해졌다는 불만이 많기 때문이다. 그 불평불만을 뚫고 서울역 고가를 공중정원으로 리모델링한 ‘서울로7017’이 20일 개장한다.

1970년 준공된 서울역 고가는 속도와 효율을 중시한 산업화 시대 산물이다. 교량은 가로질러 갈 수 없는 남대문(숭례문)과 만리재길 사이 서울역 기찻길을 차로 5분 안에 주파하도록 했고, 퇴계로에서 청파동으로도 신속하게 갈 수 있도록 연결했다. 사람은 육교나 지하도로 내몰린 반면, 지상에는 대규모 차로를 만들어 차량의 빠른 운행을 도모하는 ‘한강의 기적’의 상징이다.

가치관은 세월이 지나면 바뀐다. 속도보다는 여유를, 효율보다는 배려와 공존을 더 생각한다. 이에 박 시장은 수명이 다한 고가를 철거하는 대신 공중공원으로 만들어 보행성을 강화하는 식으로 재생사업을 주도했다. 걷기 좋은 도시가 환경, 건강, 지역 경제와 같은 가치를 지키는 데 훨씬 유리한 덕분이다. 세계적인 도시계획의 패러다임이 교통에서 보행으로 바뀐 것과 관련이 있다. 과거 개발 시대의 상징인 고가에 보행이란 새 시대의 가치를 담아 서울로7017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길이 막힐 때마다 눈앞에 존재하지만 절대 차로는 달릴 수 없는 고가를 바라보며 서울로7017을 비판한다면 교통 중심적인 시각이다. 고가를 강화해서 차도로 쓰면 교통 흐름을 좋게 하고, 공원이 필요하면 서울역 광장을 재구조화해서 쓰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실제로 고가는 시가 공원을 만들려고 폐쇄 결정을 내린 게 아니다. 이미 지난 2006년 말 안전등급 D등급 판정을 받아 철거될 운명이었다. 보강 공사를 해도 차량용 고가로는 쓸 수 없었다. 차량용으로 고쳐 쓰려면 새로 짓는 수준의 돈이 들어가 경제적으로 불리한 선택이라는 설명은 설득력 있다. 서울역 앞 광장을 크게 만들자는 아이디어 역시 매력적이지 않다. 20개에 가까운 차선이 있는 서울역 앞에는 버스 정류장과 택시 승강장 등이 4개 이상의 차선을 차지하고 있는데, 광장을 크게 만들려면 복합 환승공간을 옮겨야 한다. 교통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서울로7017 사업의 모티브가 된 미국 뉴욕 ‘하이라인 공중길’과 비교하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빌딩 사이로 뻗어 있는 9m 높이의 하이라인과 달리 서울역 차도 한가운데 17m 높이로 홀로 우뚝 선 고가는 안정감이 떨어진다. 조성한 공간이 자연스럽지 않고, 숭례문과 같은 원경 말고는 주변에 볼거리도 별로 없다. 인근 봉제 상인들이 호소하는 생존권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보완해야 할 점에도 불구하고 서울로7017은 서울 도심에 없던 보행의 재생이란 점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고가의 17개 가지길로 서울역 일대를 걸어다니면 침체된 주변 지역을 활성화할 가능성이 높다. 박 시장이 ‘걷기 좋은 서울’을 만들겠다며 보행 재생에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거꾸로 ‘차 때문에 보행이 불편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걷기의 장점을 생각하면 시민 모두가 수혜자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시작됐다.

jhj@seoul.co.kr
2017-05-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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