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許하라”

업데이트 2017-04-28 22:31
입력 2017-04-28 22:28

평화의 얼굴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또 한 청년이 전과자가 될 판이다. 지난 26일 춘천지법 형사1단독은 양심을 이유로 입영 거부한 청년에게 실형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청년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것은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처벌 예외사유로 정한 정당한 사유”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반면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헌법적 법익보다 우월한 가치라고는 할 수 없고 양심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다는 사정만으로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병역의 의무는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로서 대체복무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현행법하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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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군대’만큼 첨예하고 민감한 사안도 없다. 군대에 가야 하는 당사자도 그렇지만,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부모를 비롯한 온 가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벌써 오래전부터 사회적 이슈였다. 특히 기독교가 이단으로 규정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개입된 일이라 해법은 난망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해법은 2007년 출간된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평화의 얼굴’(교양인)을 통해 벌써부터 존재했다. 사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남북 대치 상황의 문제도 아니고 보수 기독교가 이단을 처단하는 차원의 문제와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평화의 실천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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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이는 대목은 법학자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어떻게, 어디까지 규정할 것인가를 설명한 대목인데, 저자는 “국가권력이 필요에 따라 제약할 수 있다는 논리는 보편적 타당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병역거부는 한 인간이 양심의 명령에 따라 내리는 거짓 없는 고민의 결론”이자 “실존적 결단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은 감옥에 가고 사회로부터 거부와 모욕을 당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처럼 큰 양심의 실천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장삼이사들은 끝끝내 이렇게 반문한다. “그럼 군 복무한 우리는 비양심적이란 말입니까?”, “병역거부는 이단들이나 하는 짓 아닙니까?” 저자는 이 같은 질문이 “악의에 찬 의도로 고안된 일종의 함정”이라고 주장하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어야 하는 법적 의미를 소상하게 밝힌다. 나아가 보다 숭고한 인권 차원에서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사회적 환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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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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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한국 사회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와 국가권력이 충돌하는 가장 치열한 전쟁터”라고 규정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한사코 ‘이단’ 문제로 치환하는 보수적 기독교를 향해 “기독교는 그 역사만큼이나 오랜 병역거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서, 사랑 실천을 제일 덕목으로 삼는 기독교인들의 넓은 아량을 요청한다. 참고로 김두식 교수는 여러 저서와 인터뷰에서 밝혔듯 보수적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단지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를 한다는 이유로 한 인간을 죄인으로 만들고, 수년 동안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오히려 양심적이지 못하다.

저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이자 “우리가 지키려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까지 말한다. 엠네스티에 따르면 1950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모두 1만 8700여명이 수감되었다. 이는 단순한 숫자 혹은 통계가 아니라 그간 우리 사회가 부지불식간에 짓밟은 한 청년의 양심과 꿈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2017-04-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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