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얼마 줄거요” “별풍선 30개”… 카드영업 ‘검은공생’

백민경 기자
백민경 기자
업데이트 2017-03-26 19:41
입력 2017-03-26 18:14

카파라치에 실적왕에서 실직자로… 어느 설계사 고백으로 본 ‘카드 불법 모집‘

저는 S 카드사에서 10년 넘게 VIP 담당 카드설계사로 일했습니다.

전국 실적 1위도 찍어봤지요. 지금은 금융감독원에서 6개월 영업정지를 받아 사실상 ‘잘린’ 상태입니다. ‘카파라치’에게 걸려서지요.

자신을 대기업 10년차라고 둘러댄 카파라치가 “김 여사에게 소개받았다”며 다가왔습니다. VIP카드를 만들건데 연회비 60만원 중 얼마를 보조해줄 건지, 입금은 어떻게 할 건지, 설계사인지 못 믿겠으니 명함을 찍어서 보내달라고요.

실적에 눈이 멀어 순순히 따른 제 잘못입니다. (현행법상 카드 모집시 연회비 10%를 넘는 경품은 불법이다) 부끄럽지만, 저도 할 말은 있습니다. 온라인 카드모집에 밀리지 않으려다 보니 ‘괴물’이 됐다는 것을요.
이미지 확대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
●‘쌍벌제’ 아니라고 고객 대놓고 요구

한 대기업 50대 부장님은 아예 카드설계사 리스트를 갖고 다닙니다. 6개월마다 VIP 카드를 바꾸는 대신 “이번엔 몇개 줄거냐”고 먼저 묻습니다. 약 값 결제가 많은 약사나 의사들도 비슷한 문의가 많습니다. 이렇게 금품을 요구하는 고객들은 설계사에게 범법을 부추기면서도 스스로 ‘스마트’한 소비자라고 착각을 합니다. 카드 모집인에게만 과태료나 영업정지 같은 제재가 가해질 뿐 고객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으니 부담이 없겠지요. 그래서인지 현금을 안 주고 싶어도 “설계사님 지금 시장 단가가 얼마인데, 왜 그러세요?”라며 비아냥대는 분들도 있습니다.

온라인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S카페에 들어가면 쪽지로 ‘별풍선 30개(현금 30만원)를 쏴준다’고 날아옵니다. 아예 ‘카드신청만 하면 건당 10만원을 지원한다’고 대놓고 홍보하는 곳도 있지요. 작성자에게 쪽지로 문의하면 SNS나 이메일로 카드 신청서를 작성해달라는 답이 옵니다. 물론 카드 발급되면 현금이 입금됩니다.

●연회비 2만원짜리에 현금 8만원 줘

통상 2만원 연회비를 내는 카드를 받으면 8만원을 쏴준다고 하네요. 카드발급 심사 시 자필서명 여부 등을 카드사에서 묻지만, 고객하고 짜고 치는 것이라 무사통과입니다. 요즘 뜨는 P사이트에는 하루에만 수백 건에 달하는 카드 불법모집 게시물이 올라온다네요. 물론 모두 불법입니다.

하지만 카파라치도 이들을 잡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카드 불법모집을 신고하려면 모집인의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거든요. 하지만 온라인 모집은 쪽지나 이메일 등을 통해 연락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신고가 불가능합니다. 한번 거래를 튼 뒤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6개월 단위로 연회비를 주며 갈아타기를 시키기도 한다네요. 모집인은 수수료를, 고객은 현금을 챙기는 ‘검은 공생’이 지속되는 거죠.

●실적 위해 불법 눈감는 카드사도 공범

문제는 불법모집이 증가하면 결국 소비자에게 그 비용이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카드 모집인 비용은 카드사 마케팅 비용이나 수수료 원가 등으로 잡혀 부가 서비스 축소나 수수료 인상 등으로 이어지니까요.

이런 온라인 불법모집이 계속되는 것은 실적때문에 눈감아주는 카드사의 내부 조력자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들은 “숫자(카드모집 건수)가 깡패다. 매수가 등급이다”라고 말합니다. 저도, 처음부터 불법영업을 하려고 모집인이 된것은 아닙니다. 제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 당국도 속수무책인 온라인 불법모집 행태를 막지 못하면 악순환은 끊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느덧 ‘공범’이 된 고객님들도 불법지원금은 다른 이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2017-03-27 14면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120년 역사의 서울신문 회원이 되시겠어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