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노래

입력:03/01 22:26 수정:03/0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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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Song)

-크리스티나 로세티(1830~1894)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날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세요;

내 머리맡에 장미꽃도 심지 마시고,

그늘진 사이프러스도 심지 마세요:

내 위에 푸른 잔디가

비와 이슬방울에 젖게 해주세요:

그리고 생각이 나시면, 기억하시고,

잊고 싶으면, 잊어 주세요.

나는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비가 내리는 것도 느끼지 못할 거예요;

고통스러운 듯 노래하는

나이팅게일 소리도 듣지 못할 거예요:

해가 뜨거나 저물지도 않는

희미한 어둠 속에서 꿈을 꾸며,

어쩌면 나는 기억하겠지요,

어쩌면 잊을지도 모르지요

When I a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s for me;

Plant thou no roses at my head,

Nor shady cypress tree:

Be the green grass above me

With showers and dewdrops wet:

And if thou wilt, remember,

And if thou wilt, forget.

I shall not see the shadows,

I shall not feel the rain;

I shall not hear the nightingale

Sing on as if in pain:

And dreaming through the twilight

That doth not rise nor set,

Haply I may remember,

And haply may forget

*

이런 시에는 해설을 쓰고 싶지 않다. 그냥 스치듯 들어도 가슴을 울리는 슬픈 노래 같은 시. 제목도 간단히 ‘노래’(Song)이다. 내 인생의 노래를 부른다는 심정으로 지은 시일 게다. 시를 다 지어놓고 죽 읽어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각운과 박자를 맞추느라 감상에 빠질 겨를이 없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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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묘비명 같은 노래를 썼을 때, 로세티의 나이는 서른두 살. 인생의 단맛 쓴맛을 맛보았겠지만 아직 파릇파릇, 상처도 싱싱할 때다. 푸른 잔디가 우거지고 이슬에 젖은 그녀의 ‘노래’는 슬프면서도 달콤하다. 장미의 붉은빛, 사이프러스의 침침함, 푸른 잔디…붉고 푸른 색채의 대비도 눈부시다.

장미는 사랑, 사이프러스 나무는 상중(喪中)임을 상징하는 목재로 장례식에 사용됐다. 장미도 사이프러스도 필요 없다고 선언하며 시인은 그녀의 연인이 사랑과 죽음에 얽매이지 말고 그의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데, 잊고 싶으면 잊으세요라는 말투가 사뭇 간절하다.

나이팅게일은 낭만주의 시인들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새로 기쁨, 음악, 불멸과 관련된 상징이었다.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기쁨이 아니라 고통과 연관시키며, 로세티는 자연이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세계라는 기존의 통념을 부정한다.

*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 그리고 “내가 죽거든 When I am dead”으로 시작하는 도입부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연상됐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1

내가 죽거든 싸늘하고 음산한 종소리(弔鐘)를 듣고

종소리보다 오래 애도하지 마세요

가장 역겨운 구더기와 살려고 내가 이 역겨운 세상을 떠났다고,

세상에 경고하세요.

이 시구를 읽어도 시를 쓴 손을 기억하지 마세요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그대의 향기로운 머리에서 잊혀지길 바라니까요.

(후략)

기억과 망각의 또렷한 대비에서 셰익스피어의 영향이 감지된다. 기억과 망각, 생과 사의 차이를 즐기는 듯한 태도, 그 넘치는 자의식이야말로 현대성의 증거이며 수백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시가 살아남은 이유이다.

*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1830년 영국 런던에서 이탈리아 혈통의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도 시인이었고, 오빠는 저 유명한 라파엘전파의 화가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이다. 문학과 예술에 둘러싸여 자란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열두살 되던 해부터 시를 지었고, 스무살인 1850년 그녀의 오빠와 친구들이 만든 라파엘전파의 잡지에 7편의 시가 실렸다.

신비스럽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그녀의 시 세계는 같은 해에 태어난 미국의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과 종종 비교되는데, 초자연적인 주제를 선호하는 경향은 비슷하지만 접근 방식은 상이하다. 디킨슨이 자신의 방에 갇혀 당대 어느 시와도 닮지 않은 독창적인 시를 썼다면, 로세티는 그녀에게 익숙한 영국의 시적 전통 안에서 세련된 기술을 구사한 시인이었다.

디킨슨처럼 로세티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로세티가 열네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병을 앓아 킹스 칼리지 교수직을 잃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어머니는 밖에 나가 교사로 일했다. 그녀의 언니도 입주 가정교사가 되어 집을 나가고 낮에 홀로 남겨진 로세티는 고독을 견디지 못해 신경쇠약에 걸려 학교를 그만두었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로세티 집안의 여자들-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로세티는 영국 성공회에 심취했고, 이후 그녀의 인생에서 종교적 헌신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오빠의 친구인 젊은 화가와 약혼했던 로세티는 약혼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자 파혼을 선언했다.

혼자 살던 로세티의 생계는 오빠 윌리엄이 챙겨주었다. 오십대에 이르러 가정교사를 꿈꾸던 로세티는 갑상선 질환에 걸려 가정교사의 꿈을 접고 집안에 틀어박혀 종교적인 시와 산문을 집필했다. 암을 앓던 로세티는 64세에 런던에서 사망했다. 서른살에 ‘내가 죽거든’으로 시작하는 시를 쓴 시인치고는 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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