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어느 입술이 내 입술에 키스했는지

입력:11/30 20:40 수정:11/30 22:23

어느 입술이 내 입술에 키스했는지(What lips my lips have kissed)

▲ 최영미 시인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어느 입술이 내 입술에 키스했는지

어디서, 어째서 그랬는지 나는 잊어버렸다

그리고 어느 팔이 아침이 될 때까지

내 머리를 받쳐 주었는지도

그러나 오늘 밤 내리는 비는

문을 두드리고 한숨지으며 내 대답을

기다리는 망령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고요한 고통이 솟아오른다

이제 다시는, 한밤중에 소리치며 내게로

돌아올 일 없을,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젊은이들로 하여.

그리하여 겨울 되어 외로운 나무 하나 서 있다

나무는 어떤 새들이 하나씩 사라져 갔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 가지들이 훨씬 잠잠해졌음을 안다

어떤 연인들이 왔다 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 속에서 얼마동안 노래했던 여름이

이제 더이상 내 속에서 노래하지 않음을 나는 안다.

What lips my lips have kissed, and where, and why,

I have forgotten, and what arms have lain

Under my head till morning; but the rain

Is full of ghosts tonight, that tap and sigh

Upon the glass and listen for reply,

And in my heart there stirs a quiet pain

For unremembered lads that not again

Will turn to me at midnight with a cry.

Thus in winter stands the lonely tree,

Nor knows what birds have vanished one by one,

Yet knows its boughs more silent than before:

I cannot say what loves have come and gone,

I only know that summer sang in me

A little while, that in me sings no more.

- 최승자 번역

*

▲ 길종만 기자



슬프지만, 감상적이지 않다. 힘이 있다. 아~ 이런 시에 무슨 설명을 덧붙여야 하나. 나뭇가지와 새처럼 구체적이고 쉬운 비유, 더 보태고 뺄 것도 없는 한 줄 한 줄이 우리의 가슴 깊은 곳을 휘젓는다.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1892~1950)라는 이름을 나는 최승자 시인이 번역한 시선집 ‘죽음의 엘레지’를 통해 처음 접했다. 자신의 체험을 보편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서정시인이면서 밀레이는 또한 독을 품은 페미니스트였다.

‘어느 입술이 내 입술에 키스했는지, 어디서 어째서 그랬는지 나는 잊어버렸다’로 시를 시작하는 대담함은 아무나 갖기 힘들다. 1920년대에 여성시인이 감히 자신의 입술을 노래한다? 저 점잔 빼는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영국에서였다면 밀레이는 주류 문단에서 소외됐을지도 모른다. 남성적인 이름인 ‘빈센트’를 고집할 만큼 자아가 강했던 그녀는 신대륙 미국에서 활동했기에 마음껏 자신의 개성을 발산하지 않았나 싶다.

밀레이는 미국 메인 주에서 간호사인 어머니와 학교선생인 아버지 사이에서, 세 딸 중의 맏딸로 태어났다. 밀레이가 열두 살 적에 부모님이 이혼해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엄마는 딸들에게 야심만만한 자신감과 독립심을 고취시켰다. 근무지를 따라 이동이 잦았지만 시간만 나면 엄마는 딸들에게 셰익스피어와 밀턴을 읽어 주었다.

1912년, 스무 살의 밀레이는 엄마의 권유로 시 대회에 출전해 ‘르네상스’라는 제목의 시를 써서 4등으로 입상했다. 입상한 작품들이 책으로 묶여 나오자마자 언론이 들끓었다. 누가 보더라도 밀레이의 작품이 가장 뛰어났던 것.

1등을 차지한 아무개도 “밀레이의 ‘르네상스’가 최고의 시”라며 당혹감을 표현했고, 2등을 한 참가자는 자신이 받은 상금 250달러를 밀레이에게 주었다. 밀레이의 ‘4등’이 지역문화계의 스캔들이 되었고, 소문을 듣고 그녀의 낭독회를 찾아온 어느 부유한 부인은 밀레이의 미래를 위해 대학 장학금을 내놓았다. 명문여대인 바사대학을 다니며 밀레이는 당대의 급진적인 여성운동가들과 친하게 지냈다. 대학을 졸업한 해에 첫 시집 ‘르네상스와 다른 시들’을 발간하고, 여성들 사이의 사랑을 그린 희극을 쓰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밀레이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로 이사했다. 좁은 다락방에 살며 생활비를 벌려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쓰고 보헤미안처럼 살았던 시절을 그녀는 “아주, 아주 가난했지만 아주, 아주 즐거웠다”고 회고했다.

밀레이는 공공연한 양성애자였다. 1923년 서른한 살의 밀레이는 마흔세 살의 노동법 전문 법률가 유진과 결혼했다. 페미니스트였던 유진은 결혼 이후 밀레이를 위해 낭독회 등 문학행사를 주선했다. 그녀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남편 덕분에 밀레이의 대중적 인기는 높아갔다.

밀레이 부부는 26년의 결혼생활 동안 서로에게 자유를 허용하며 두 명의 독신자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밀레이는 젊은 제자를 애인으로 두었고 남편인 유진도 마찬가지. 둘은 뉴욕의 근교에 농장을 사들여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어 직접 기른 채소를 먹었다. 그들의 행복은 1949년 유진이 암으로 죽으며 끝났다. 남편이 죽은 뒤 혼자 살던 밀레이는 1950년 어느날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소설 ‘테스’의 작가 토머스 하디는 밀레이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는 두 개의 매력이 있다. 고층빌딩 그리고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의 시.

그리하여 겨울 되어 외로운 나무 하나 서 있다. 어떤 새들이 왔다 갔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발밑에서 부서지는 낙엽을 밟으며, 내 속에서 노래했던 여름을 추억해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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