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믿음의 씨앗 ‘애착’

업데이트 2015-11-20 18:23
입력 2015-11-20 18:23
하수정의 아이(child) 터치

과거에는 부모님들이 애착이란 말을 많이 쓰지 않았는데, 최근 젊은 어머니들은 애착이란 표현을 곧잘 쓴다. 그리고 언제인가부터는 아버지들도 ‘이렇게 해야 애착이 잘 형성되죠?’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것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애착이라는 말이 실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라기보다는 주로 아동발달이나 부모양육을 연구하는 학문분야에서 쓰여 온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요즘 부모님들은 어떻게 아이를 길러야 하는지, 특히 젊은 부모님들일수록,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일수록 강연이나 책 등을 통해 자녀발달과 양육에 대한 전문적 정보를 구하고 있다.

그런데 부모님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애착에 대해 대개 두루뭉술한 개념 정도는 이해를 하지만, 애착이 왜 중요한지, 애착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왜 특정 애착이 생기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아이에게 사랑을 느끼게 해 주세요. 그래야 건강한 애착이 발달됩니다.”라는 메시지를 막연하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왜’, ‘그래서 어떻게’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건강한 애착 형성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된다.

애착은 인간관계의 원형(原型)

애착(attachment)은 부모 혹은 그 밖의 특별한 인물과 형성하는 친밀한 정서적 유대를 뜻한다. 따라서 애착은 비단 부모와 자녀 사이에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조부모나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애착이 존재하며, 이성친구나 배우자와도 특정한 애착이 형성된다.

애착이 다양한 인간관계 사이에 존재하지만, 그래도 양육자(주로 부모)와의 애착이 가장 중요하다고들 한다. 그 이유는 아기 때 자신을 기르고 돌봐준 대상과의 사이에서 형성된 애착관계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애착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령 아기 때 양육자가 자신을 잘 돌봐주지 않는 사람, 충분한 애정과 신뢰를 느낄 수 없는 대상이라고 여기게 되면 그 기억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렸을 때 양육자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부정적인 대상이라는 개념이 형성된 아동일수록 타인과 세상이 자신에게 적대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니 실제로 만족스럽지 못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반면 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한 아동은 세상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긍정적으로 기대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다보니 실제로 좋은 대인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부분은 리더십이나 팔로우십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저들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또 그런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설령 좋은 리더를 만난들 어차피 리더와 동료들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유 있는 아이의 성격

어떤 아이는 걸핏하면 화를 잘 내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런 아이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꾸 꾸짖게 되고 심지어 아이가 미워지기까지 한다. 집에서 늘 큰소리를 내다보니 부모 자녀 관계도 안 좋아지고, 당연히 학교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게 된다.

또 어떤 아이는 다른 사람한테 별로 관심이 없고 애정을 표현하는 일이 드물다. 학교 친구하고도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않고 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친구들도 자연히 이런 성격의 아이를 멀리하게 되고 이 아이는 점점 더 외톨이가 된다. 부모로서는 친구가 없는 자녀가 당연히 걱정될 것이다.

이 아이들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유는 여러 가지 일 수 있으나 많은 경우 근본적인 원인을 애착의 형성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아기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린 아기들 대부분이 2세까지 부모와의 애착을 형성하지만 애착관계의 질은 아기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에 에인스워스(Ainsworth)라는 학자는 애착관계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고안해냈는데, 이것이 잘 알려진 ‘낯선상황실험’이다.낯선상황실험에서는 장난감이 많은 낯선 방, 낯선 사람이 있는 환경에서 엄마가 방을 나갔다가 들어왔을 때 아기의 반응을 보고 애착의 유형을 분류한다. 대개 많은 아기들은 엄마가 곁에 있으면 엄마한테서 떨어져서 처음 보는 장난감들을 열심히 탐색하고, 엄마가 방을 나가면 조금 당황하지만 심하게 울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가 다시 돌아왔을 때 달려가 안기며 쉽게 달래진다. 이러한 타입의 애착은 가장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유형이다.

그런데 어떤 아기들은 아예 엄마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새로운 장난감을 탐색하지 못한다. 이런 아기들은 엄마가 나갔다가 들어오면 엄마한테 매달리면서 동시에 밀쳐 내거나 때리는 행동을 한다. 또 어떤 아기들은 엄마가 있든 없든 별 반응이 없고, 엄마가 나갔다 들어왔을 때 별로 반기지 않거나 심지어 엄마를 피하기도 한다. 왜 그러는 것일까?

엄마한테 매달리면서도 밀쳐내고 때리는 양가적인 행동을 보이는 아기는 엄마가 아기의 요구에 일관성 없이 반응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아기가 배고파서 울고 관심을 요구할 때 어떤 때는 즉시 안아주거나 먹을 것을 주지만, 어떤 때는 아기를 기다리게 하거나 아예 관심을 주지 않은 경우이다. 그래서 아기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엄마를 신뢰하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불안해하고 과장되게 화를 낸다. 이런 아기는 나중에 화가 많고 공격성이 강한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높아진다.

엄마한테 반응이 없고 엄마가 나갔다 들어왔을 때도 반가워하지 않고 피하는 아기는 평소 애정을 잘 표현하지 않거나 아기의 요구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엄마를 둔 경우이다. 이런 엄마는 스킨십을 어색해하고 설령 아기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자기 자신의 문제 때문에 아기에게 신경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아기는 아예 엄마한테 기대를 안 한다. 기대를 하면 자신만 좌절하고 상처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기들은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고 혼자 놀기 때문에 얼핏 어른스럽다든지 점잖은 아이로 여겨질 수 있으나, 사실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에 혼자 노는 것이다.

아기에게는 낯선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언가 든든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안전기지가 필요하다. 기지가 안전하지 못할 때 아기는 모든 게 불안하기 때문에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한 아이들의 부정적인 반응은 사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방어체계를 가동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자신을 돌보고 보호해야 하는 존재에게 나를 좀 돌아봐달라고 강하게 어필하거나, 아예 기대하는 마음을 접어서 상처받지 않음으로써 심리적인 스트레스라도 줄여보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기가 낯선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불안정한 애착반응을 보이는 아기들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짠하다.

안정된 애착 형성 방법

그럼 어떻게 해야 아기가 안정애착을 형성할 수 있을까? 애착형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생후 첫 1년간 부모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가이다. 아기가 웃을 때 함께 얼굴보고 웃어주고, 배고파하면 얼른 수유를 해 주는 등 아기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안정 애착이 형성된다. 그리고 특히 중요한 것 중 하나, 바로 스킨십이다.

스킨십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아주 유명한 실험이 있다. 1959년 할로우(Harlow) 박사는 새끼 원숭이에게 두 가지 형태의 양부모를 제시하였다. 하나는 먹이를 주는 철사 원숭이 모형, 다른 하나는 먹이를 주지 않는 헝겊 원숭이 모형이다.

헝겊조각은 먹이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편안함과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새끼 원숭이는 일단 배가 고프니까 철사 원숭이에게 가서 급히 우유를 먹었지만, 일단 먹고 나면 얼른 헝겊 원숭이에게로 옮겨갔다. 그리고 18시간 동안 내내 헝겊 원숭이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새끼 원숭이는 배불리 먹여주는 것 보다는 스킨십과 보살핌을 택한 것이다. 특히 무서운 대상이 나타났을 때는 지체 없이 헝겊 원숭이에게 달려가서 안겼다. 사람도 무서우면 자기를 포근하게 안아주고 위로해줄 존재에게 달려간다. 이는 애착에 있어 먹이도 중요하지만, 스킨십을 통한 안정감과 사랑의 전달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그렇다면 애착이란 것이 주로 아기를 돌보는 엄마와의 관계에서만 중요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기는 아빠와도 애착을 형성하며, 특히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일수록 아기가 안정적인 애착반응을 보인다. 또한 아빠와 안정된 애착을 형성한 아기는 긍정적인 정서반응을 더 많이 나타낸다. 따라서 아기가 자라서 밝고 건강한 대인관계를 이루는데 기여하려면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함께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아기를 두고 일을 나가야 하는 엄마들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기와 하루 종일 같이 있다고 해서 안정애착이 형성되고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불안정 애착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린 시기에는 아무래도 시간을 함께 보내주면 더 좋겠지만, 시간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가급적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눈을 맞춰주고 같이 놀아주며 애정이 깃든 스킨십을 해주는 것이 충분히 도움이 된다.

생후 1년, 평생 돌이킬 수 없는 것일까

언젠가 입양을 신청한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대부분 매우 어린 갓난아기를 입양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강의 시간 내내 생후 1년의 애착발달의 중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하였다. 참석하신 부모님들의 눈빛은 매우 진지했고, 강연이 끝난 후 몇몇 분은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는 고마운 말씀을 해주시기도 하였다. 뿌듯한 마음으로 강연장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나이가 조금 있으신 어머니 한 분이 나를 쫓아 나오셨다. 강연 내용을 듣다가 궁금한 것이 있다고 하셨다.

“저는 3살 아기를 입양할 예정인데요. 그 아기는 시설에서 보살핌을 받은 아기라 생후 1년 동안의 중요한 시기에 제대로 애착이 발달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태어나서 1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시니, 그럼 저희 집에 입양된 후에도 애착이 두고두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 어머님의 질문을 듣고 나서야 나는 아차 싶었다. 입양을 앞둔 부모님들에게 생후 1년의 애착이 평생의 대인관계를 결정짓는다 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그래서 그 어머니에게 시간은 걸리겠지만 지속적으로 안정 애착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보이시면 아이도 나를 돌봐주는 사람에게 신뢰감을 갖게 되고 결국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발달에는 결정적인 시기라는 것이 있다. 애착 형성의 경우는 생후 1년이 결정적인 시기이다. 따라서 이 때 안정된 애착을 형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시기가 있다고 해서 회복 불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여건이 안 되서, 잘 몰라서 중요한 시기를 놓쳤다면 그 이후에라도 노력하면 된다. 다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더욱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대단히 많은 사랑과 인내심이 요구된다. 아기가 이미 생후 1년간의 경험으로 불안함과 불신이 차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아기의 부정적인 반응이 바뀔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주어야 한다.

일단 안정된 애착이 형성된 아이는 심리적으로 불안하지 않기 때문에 기꺼이 세상을 탐색해 나간다. 그러니 경험과 지식이 쌓이고 운동신경이 발달하며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진다. 스스로 탐색한 아이는 성취감을 느끼고 상황에 대한 통제감을 얻는다. 또한 사교적이고 또래관계에서도 건강한 상호작용을 많이 한다. 이렇듯 애착은 아이의 인지, 신체발달과 심리적 건강 등 모든 면의 발달에서 중요한 근간이 된다.


안정된 애착형성을 돕는 8가지 부모 지침


▪ 아기의 신호에 항상 관심을 갖고 즉시 반응해주세요.
▪ 아기의 신호에 일관성 있게 반응해주세요. 때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면 아기가 신뢰감을 갖기 어려워요.
▪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나가야 할 때 아기 몰래 떠나지 마세요.
▪ 아기가 울 때 울다 지쳐서 멈추게 하지 말고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봐 주세요. 아기의 울음은 무언가 부모에게 신호를 보내는 행동이니까요.
▪ 까꿍놀이나 숨바꼭질은 아기에게 사람은 사라졌다 다시 되돌아온다는 것임을 가르쳐주는 좋은 기회가 된답니다.
▪ 아기에게 사랑이 담긴 스킨십을 가급적 자주 해주세요.
▪ 지나친 간섭은 금물이에요. 아기가 장난감 갖고 노는데 몰입해 있을 때는 혼자 열심히 탐색하도록 내버려 두세요.
▪ 아빠도 엄마와 다르지 않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아기의 요구에 열심히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을 표현하여 주세요.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120년 역사의 서울신문 회원이 되시겠어요?
닫기